행복

걷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biocat 2020. 3. 27. 14:48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보면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 (여행하는 인간, 걷는 인간)라고 했다고 하지요. 빠르지도 않고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을 가지지 못한 옛 인간의 사냥 방법도 소개되어 있는데, 그 동물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무조건 따라갔다고 합니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처음 나타난 시기가 700만 년 전이고요 농경 사회가 시작되면서 정주하기 시작한 건 BC11000 년경이었다지요. 그러면 약 600만 년 이상의 기간 동안 인간은 수렵 채집하면서 살아갑니다. 600만 년 동안 계속 걸어 다니며 생활했다는 것이지요. 700만 년 동안 진화해 오면서 600만 년을 걸으며 생활했다는 것은 우리 유전자 속에 아직도 걷기 본능이 잠재되어 있지 않을까요.

요즘같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발전(요즘 사회의 발전이 진정한 발전인지는 모르겠지만)하는 시대에 스트레스 없이 행복하게 살려면 본능대로 사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을 때나, 고민이 있을 때, 종종 걷습니다. 걷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도 생각나고, 스트레스도 많이 줄어듭니다. 그래서 어제는 걸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잠에서 깼습니다. 아직 깨지 않은 마나님과 따님께 누가 되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용하게 세차용품을 챙겨 세차장으로 갑니다. 물론 제 차가 아닌 마나님 차를 몰고요… 그래야 마나님 꼬셔서 같이 산책을 할 수 있거든요. 열심히 세차하고, 왁스까지 바릅니다.

 

이 정도 광빨이면 성공입니다.

집에 돌아와 우아하게 찬밥과 김치로 대표되는 브런치를 즐긴 후 슬슬 세차하느라 온몸이 뻐근하다고 공치사를 늘어놓습니다. 벌써 눈치를 챘는지 조금 더 쉬다가 오후 2시쯤 나가자고 합니다. 

마나님이 오후에 가자는데는 이유가 있어요. 제 산책의 이유는 막걸리거든요. 전 아무리 오래 걸어도 중간에 물 안 마십니다. 등산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산책 후 마시는 얼음 동동주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오전에 산책을 시작하면 분명히 한낮부터 막걸리 먹을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늦춰서 출발합니다.

2시 땡~ 하자마자 산책을 나섭니다. 우리 집이 춘천이고 아파트 바로 앞, 강변을 따라 자전거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계속 걷습니다. 아직 완연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파랭이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오늘의 목표 지점은 폴리텍 춘천 제2캠퍼스 앞을 지나 소양강 댐 근처 닭갈비 촌입니다. 

 

길 끝이 안 보입니다. 마나님은 반도 못 왔는데, 다리가 아프네, 어쩌네 하면서 엄살을 시작합니다. 그래도 좋은 공기 마시니 좋지 않냐고, 강물 좀 보라고... 조금만 더 가보자고... 계속 꼬시며 걷습니다. 강물이 깊지는 않아도 파란 게, 띄엄띄엄 아직은 갈색인 수초들과 어우러져, 봄은 아직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목적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계속 걷습니다.



그림자 찍기 놀이도 해 봅니다. 마나님은 그림자에서도 자기 뚱뚱해 보인다고 숨으려 합니다.



드디어 도착. 이른 브런치에 3시간 걷기 후라 배가 무쟈게 고프네요. 떡 사리 추가했습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코로나 영향으로 한산했는데, 코로나도 봄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닭갈비 집마다 차가 가득가득합니다. 유명한 곳은 대기 시간이 1시간도 더 걸려서 그냥 유명하지 않은 집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막걸리도 한잔.... 두 병 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여기서 닭갈비에 막걸리 먹고 또 걸어서 귀가할 생각이었는데, 마나님이 자기 죽이랍니다. 죽기 전에는 걸어서 못 간다고... 할 수 없이 버스를 탔습니다. 

완전 감성 돋습니다.

 

이렇게 일요일 산책 마무리했습니다. 한 10km 정도 걸었네요.

되도록이면 매일 한편씩이라도 글을 쓰려고 했는데요. 오늘은 정말로 쓸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소소한 일상 한번 공유해 봅니다. 아침부터 다리가 뻐근하니, 기분 괜찮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괜찮은가요? 괜찮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