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이야기

솔직함에서 오는 자존감!

biocat 2020. 3. 31. 09:48

2015년 무렵의 일이었어요.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출근해서 사무실로 들어서는 데 배양 팀장이 따라 들어옵니다. ‘뭐지? 또 일 터졌나?’ 하면서 “또 무슨 일인데? 오염이야?” 설마 하는 마음이었어요. 

바이오의약품 공정 중 제일 골치 아픈 문제가 오염이에요. 미생물은 어디에도 있기 때문에 오염원인을 찾기도 힘들뿐더러, 미생물 1마리가 1마리가 아니어서, 이전에 성공한 Batch들은 100% 오염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죠. 

미생물 1마리가 1마리가 아니라는 의미는 얘네는 1마리만 들어가면 계속 자라 나오기 때문이에요. 소독제 광고에 소독력 99.9%라고 자랑을 하는데요, 제겐 별 의미 없어요, 100%가 아니면요… 그리고 많이 자라 나오기 전까지는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죠. 

우리가 키우는 미생물하고 생김새가 비스무리 한 균으로 오염된 경우에는 더 알아채기 힘들죠. 

 

아무튼 컴퓨터도 안 켜고 배양팀장을 앞세워 현장으로 갑니다. 이미 배양 팀원들은 죽을죄를 지었다는 표정으로 하나 같이 고개를 푹 숙이고, 저랑 눈도 못 마주칩니다. 

배지 제조 단계, 멸균 단계부터 전배양, 본배양 단계로 단계별로 차근차근 되짚어 나가 봅니다. 이건 어떻게 했냐, 저건 어떻게 했냐… 배양액 Transfer 단계에 관해 묻습니다. 

“이송하기 전에 이 스팀 밸브 열고, 저 드레인 밸브 열어서 라인 멸균했지?”

“아뇨”

“그럼 다음으로…, 오잉! 뭐라고?”

“스팀 밸브만 열었는데요….”

“드레인 밸브는 왜 안 열었어?”

“공정 시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여는 걸 깜빡했어요”

.

.

.

“오케이”

그 직원과 하이파이브하고 자리로 돌아옵니다.

왜 그 직원 야단치거나 징계를 주지 않고, 하이파이브했을까요? 

이것이 직장 생활, 적어도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약품 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입니다. 솔직함

회사 생활 잘하기? 뭐 그런 주제의 세미나를 듣다 보면 꼭 나오는 말이 ‘Good Communication’입니다.

'원활한 의사소통? 근데 그게 뭐? 그래서 어떻게 하란 말이야?' 

이 사건 이후에는 ‘Good Communication’이라 쓰고 ‘솔직함’으로 읽습니다. 

 

아마 그 직원이 드레인 밸브를 안 열었다는 것을 얘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며칠 동안 오염원 찾기 위해 무진장 고생을 했을 것이고, 결국엔 명확한 원인은 못 찾고, 이것저것, 말도 안 되는 원인을 만들어내고, 계속 찝찝한 마음으로 있었을 거예요. 

이것이 제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사회생활 제1의 자질입니다. 

 

솔직함에서 오는 자존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