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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바이오로직스에서의 9년

회사생활

by biocat 2020. 5. 1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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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연일 계속되는 강의 준비로 블로그에 글을 못 올리고 있습니다. 특별한 사정으로 글을 한편 쓰게 되어 한번 올려 봅니다.

# 유바이오로직스에서의 9년의 기억

토요일 늦은 오후, 하루 지난 어버이날로 인해 오랜만에 모든 형제가 어머니 댁에 모였습니다. 술 서말을 지고는 못가도 먹고는 갈 수 있다는 민 씨 형제들이 모였으니, 해도 지기 전에 술상이 차려지고 있습니다.  
‘카톡와쑝~’. ‘주말인데 누구한테…?’ 음식 준비하다 고개만 돌려 궁금해하는 집사람과 눈 한번 마주치고 확인합니다.  
‘백영옥 사장님’…
참 고마운, 큰형 같은 인생 선배님이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 딱지 떨어진 상처처럼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아 계신 분. 
그런 분이 토요일에 카톡을… 무슨 일이지? 급히 담배 한 개비 챙겨 들고, 담배 좀 끊으라는 어머니 핀잔을 뒤로하며 밖으로 나와 내용을 확인합니다.  
유바이오로직스 창립 10년사에 담길 회고사를 부탁하시는 내용이네요. 부탁하시는 내용으로 쓰여 있는데 업무 지시로 읽힙니다. ㅠㅠ
기회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합니다.

유바이오로직스에서의 9년에 대한 회고라… 지난 세월을 한번 생각해 봅니다. 시간의 흐름을 기억하는 기능이 많이 떨어진 터라 어느 일이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어 봅니다.

너무 많은 사건이 생각납니다. 당시는 괴로운 일이었어도 시간의 힘을 빌면 모두 아련하게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과음으로 치매 전 단계까지 다다른 제 머리로도 아주 생생히 기억납니다.  
다시 인상이 깊었던 것들만 추려봅니다. 

‘내가 이런 조그만 공장 운영하려고 이직했는지 아세요?’
화순에서의 3주, 그리고 일출…
벤츠 아줌마… 녹즙 배달…
눈 내리는 배양기… Aspergillus…
출근하자마자 방으로 따라오곤 했던 배양팀장님… 사고구나.
‘도망가자’, ‘싸지른 똥은 치우고 가야죠.’
‘그만둘까?’, ‘그냥 한번 해 보세요.’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인류를 위해, 그리고 이제는 미래를 위해….
 
그래도 적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적다 보면 소책자 하나 나오겠다는 생각에 일일이 적는 것은 진작에 포기합니다.
9년이 짧지 않은 세월이었다는 생각보다는 내 인생에 참 많은 일이 일어난 9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앞섭니다. 아마도 20년 후 내 인생 전체에 대한 회고록에도 똑같이 들어갈 내용일 것 같습니다. 

대부분이 갖추어져 있던, 적어도 돈은 있었던 안정적인 회사만 다니다가, 사장님께서 내민 사업 계획서에 그려진 꿈과 사장님만 믿고, 고민 없이 유바이오로직스로 옮겼습니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사업 계획서의 커다란 규모의 새 공장이 아닌, 조그만 공장을, 그것도 빌려서 운영하게 됩니다. 사업 계획서의 항체 신약 사업도 없습니다(사장님이 거짓말을 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음 편히 속내를 얘기할 수 있는 동료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많이 외롭고 앞날이 불안합니다.
그러던 차에 3주 일정으로 전남 화순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어요. 공장이 없어서 콜레라 백신 비임상 시료를 제조하려고 간 출장이었어요. 
출장 기간 중 아침 산책길, 작은 동산에 올라 본 일출…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더 해보자’ 하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혼자 본 일출이 아닌, 동료와 같이 본 일출이었기에 거기엔 외로움도 없었습니다. 
생각이 어떻게 흘러 일출이 용기가 됐는지는 기억할 수는 없어요.
인간은 힘들 때,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희망을 찾는 것 같아요. 저는 그 희망을 일출에서 찾았던 것이었어요. 제 인생 최고의 일출이었습니다.

투자를 못 받아 월급을 4~5개월 못 받았던 적이 있었어요. 저금하면서 사는 집안이 아니었던 탓에 집사람이 많이 힘들어했죠. 제게 시집온 후 집안 살림만 했던 터라 돈벌이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겨우 풀무원 녹즙 배달 일을 하게 됩니다.
폭설이 온 월요일 아침. 눈길에 인천에서 춘천으로 출근해야 하는 제게 사륜구동인 자기 차와 바꿔 타기를 권합니다. 
그 일주일 동안 집사람은 제차인 벤츠를 끌고 다니며 풀무원 녹즙을 배달합니다. 주로 배달하던 곳이 연수 경찰서와 송도 중고차 매매 단지였고, 그 이후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제 집사람을 ‘녹즙 아줌마’로 부르다가 ‘벤츠 아줌마’로 바꿔 부르기 시작합니다. 
‘녹즙과 벤츠…’ 왠지 모르게 짠한 마음도 들고, 콜라보도 괜찮은 것 같아요.
참 쉽지 않았던 시절, 그래도 나를 믿고,  어찌 보면 나를 믿었다기보다 우리 회사, 백영옥 사장님 이하 유바이오로직스 사람들을 믿고 기다려 준 집사람에게 고마운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때 즈음 회사 통장 잔고 탈탈 털어 따뜻한 우동이라도 한 그릇씩 사 먹으라고 전 사원 통장에 넣어주신 사장님의 우동값도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어려운 시절, 서로가 서로를 믿으며 의지하고, 크지는 않지만 따뜻한 배려가 지금의 유바이오로직스를 만든 기본 정신이고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재산이 아닐까요. 

고객사 CMO Project로 동물세포를 배양할 때였어요. 오염 사고가 연달아 터집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아침 일찍 출근하면 여지없이 배양팀장님이 상기된 얼굴로 바로 따라 들어옵니다. 또 오염이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생산본부 사무실에 근무하던 분들은 다 알았데요. 팀장님이 아침 일찍 제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오염이란 것을…
이번엔 정말 오염원인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배양기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 순간… 눈이 오기 시작할 때 눈송이 한 개가 살짝 보이고, 점점 더 많아지잖아요. 딱 그것이었어요. 배양기 안에서 뭔가 하얀 눈송이 같은 것이 살짝 스칩니다. 설마 잘 못 봤겠지…, 어! 또 하나가 스쳐 지나가네요. 미치겠더라고요.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얼마 후 다시 확인한 배양기 안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근데 그거 아세요. 배양기에서 남의 속도 모르고 흩날리는 곰팡이 포자를 보고 있자니, 어느 순간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합니다. 다른 말로 ‘마음을 내려놓았다’ 라거나 ‘포기했다’ 라고 하죠.
그렇게 하염없이 멍한 상태로 흩날리고 있는 포자를 보고 있다가 문득 ‘우와~ 이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에 이런 광경을 몇 명이나 봤겠냐며, 얼굴에 미소까지 흘리며 계속 배양기 안만 들여다봅니다. 미친 거죠.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배양팀장님한테 “우리 도망갈까?” 했죠. “그래도 우리가 싸 놓은 똥은 치우고 가야죠” 합니다.
힘이 납니다. ‘에야라, 모르겠다. 끝까지 해 보자’
결국엔 CO2 Incubator의 고무 Packing 안쪽 구석의 화장실 곰팡이 발견으로 오염의 원인을 찾아냈습니다.  

이런 저런 사고로 문책성 인사를 받습니다. 열심히 해 보려고 춘천으로 이사까지 했는데 양재동 본사로 출근하랍니다. 
고민합니다. 발효쟁이가 본사로 출근해서 무슨 일을 하라고? 그만두라는 말씀인가? 
고민을 어느 동료에게 털어놓습니다. 
“나 그만둘까?”, “그냥 한번 해 보세요”
그 직원은 그냥 아무 뜻 없이 한 말일 수 있겠지만, 제게는 큰 용기가 되었어요. 그래서 계속 버틸 수 있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쓰다 보니, 힘들었던 기억만 떠오릅니다. 물론 12월 23일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받은 WHO PQ 승인 소식, 첫 출하 포장 등 즐겁고 기쁜 기억도 많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기억보다는 힘들었던 기억이 더 선명하네요.
사람 사는 게 다 그런가 봐요. 그냥 얻은 기쁨보다는 힘들고, 괴로운 상황을 견디고 버티면서 그 상황을 해결했을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낍니다. 괴롭고 지쳐 있을 때 제게 용기를 준 것은 어떤 커다란 도움이나 피난처가 아니라, 동료들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였습니다. 소소하게 반짝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것에 위로받으며 버텨냈습니다. 저는 그렇게 유바이오로직스 안에서 성장했습니다.

인생에서 좌절은 상수라고 합니다. 그 순간, 그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그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좌절을 행복으로 바꾸는 단초인 것 같아요. 특히나 많은 좌절과 괴로움을 준 유바이오로직스였지만, 버틸 힘을 준 것도 유바이오로직스이고, 그것을 함께 극복해서 짜릿한 행복감을 맛보게 해 준 것도 유바이오로직스였습니다. 

지금은 어려서부터 꾸어왔던 꿈, 선생님이 돼서 누군가를 가르쳐보고 싶은 꿈을 위해 유바이오로직스를 떠나 있습니다. 
백영옥 사장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CJ에 근무할 때에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일했고, 생산기술연구원에서는 나라를 위해 일했지만, 유바이오로직스에서의 사장님은 전 세계 인류를 위해 일하고 계시다고요.
저도 많이 동감하는 말씀입니다. 거기에 저도 한마디 곁들입니다.
지금의 저는 미래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희망을 키우고자 정든 유바이오로직스를 떠나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요.

회고록들은 제 인생이 끝날 때나, 혹은 제가 성공했다, 실패했다 하는 순간이 와야 결론이 있는 것인데요, 저는 아직 살아있고, 아직 성공적으로 살고 있는지, 실패한 삶을 살고 있는지 몰라요. 그래서 이 글에 대한 결론도 없어요.
그저 지난 9년 동안 유바이오로직스라는 따뜻한 둥지 속에서 인간 민경호는 많이 힘들어했지만, 많이 행복했고, 많이 성장했다는 것뿐입니다.  

지금 유바이오로직스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여러 후배들께서도 부디 많이 고민하시고, 많이 행복해하셨으면 좋겠어요. 그것만으로도 우리 유바이오로직스는 많이 성장할 것이고, 늘 여러분들을 보듬어 안아주고 지켜줄 거예요.

행복하세요.

2020년 05월 14일
민 경 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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